《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한국아동문학을 대표하시는 이오덕작가님과
권정생작가님의 오랜 기간(1973~2002년)에
걸쳐 서로 주고받으신
서신을 엮은 책입니다.
이오덕은 1925년생
산골 벽촌 초등학교 교사였고,
권정생은 1937년생으로
안동 일직 교회종지기였습니다. 두 사람은 12년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외롭고 고단한
인생의 동무였습니다.
1973년 1월 추운 겨울
이오덕은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무명 저고리와 엄마'를
쓴 동화 작가 권정생을 찾아갑니다.
당시 이오덕의 나이 48세, 권정생은 36세. 두 사람은 그때부터 이오덕이
세상을 떠난 2003년까지
30년간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저의 동화를 자꾸 좋게 보시려 하는데, 저는 아직 만족한 작품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제 역량 가지고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것 같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일인(日人) 작가들의 작품을 능가할 수 있는 동화를 단 한 편이라도 쓰고 싶어요.
배우지 못한 것이 제일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책 한 권을 읽는 데도 사전을 펼쳐 놓고 봐야 되니, 글 한 편 쓰는 데야 말할 나위 없지요. 그래도 자꾸 틀립니다. 어려운 말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쉬운 말로 쓰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계속 글은 쓰겠습니다. 앉아서 배길 수 있는 힘만 있으면, 무엇이 곤 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니까요. 아무와 얘기할 것이 없으니, 자연 책에 눈이 가고, 하고 싶은 말을 쓰지 않을 수 없지요.
세종문화사와는 공식적인 계약서가 없어도, 책만 팔리게 되면 적당히 생각할 테지요. 제 생각에도 그다지 기대는 못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편지를 읽어 봐도 영 제 생각과는 엉뚱한 서신을 받을 때는 오히려 실망할 지경이니까요. 그토록 많은 편지 가운데, 단 몇 장이나 진짜 편지가 있을지? 가려내 보면 한심할 거예요.
선생님,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p61)
~~~~~~~~~~~~~~~~~~~~~~~~~
[이오덕 선생님
10여 일 동안 몸이 불편했습니다.
항상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책은 읽을 수 있더랬는데 계속 누워만 있습니다. 낮에도 누워 있다가 누가 오는 기척이 나면 벌떡 일어나 앉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지냈습니다. 지금은 열이 많이 내렸습니다.....
병원에 가 보면 주장 영양 섭취를 많이 하라고 하지요.
쓸데없는 줄 알면서도 1년에 한두 차례는 병원에 가 봅니다. 종합진단, 투약, 심신안정... 도리어 병을 얻어 돌아오기 일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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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맛이 통 없어요. 남한테는 보리밥이라도 잘 먹는다 장담하지만, 어머니가 무쳐 주시던 무생채 생각이 자꾸 납니다. 고사리 무침도 산나물도, 그리고 어느 핸가 살찐 암탉을 잡아 찹쌀을 넣고 끓인 닭고움국이 꼭 한 주발이라도 먹었음 싶어요.
이게 살아 있다는 증거인가 봐요. 아니면 남들처럼 '강철 같은 굳은 마음'이 못 되어 쓸데없는 생각으로 슬퍼할 때도 많답니다.
꼭 좋은 동화 쓰겠습니다.
오늘은 그만 씁니다. 선생님의 건강을 항시 염려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건필을 빌고 있습니다.
1973년 7월 3일
권정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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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그동안 선생님한테서 가지고 온 작품, 그리고 우송해 주신 작품, 모두 읽었습니다.....
힘이 돌아가시고, 또 쓰시고 싶으시면 쓰십시오.
그러나 동화를 쓰시는 것이 선생님의 본질이고, 여기만 전념하시기 위해 남은 생명을 바치는 듯한 선생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결과가 될 것 같아 죄송합니다.
서울 가서 교섭한 결과는 곧 편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1973년 10월 1일
이오덕]
1973년 1월 18일, 이오덕은 오후 차로 안동으로 해서 일직으로 갔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무명 저고리와 엄마'를 쓴 동화작가 권정생을 찾아간 것이다.
혼자 살고 있는 일직교회 문간방, 겨울날 해거름에 찾아온 손님, 이오덕. 이오덕은 마흔아홉이었고 권정생은 서른일곱.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났습니다.
내가 권정생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일 이 년쯤 지난 봄날의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안동 조탑동 오 층 전탑 답사를 가서였습니다.
그전에는 그냥 동화 '강아지 똥'을 쓴 작가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답사를 마치고 마을에 있는 선생님 생전에 기거하셨다는 곳을 방문하고 울림이 커서 선생님의 내력을 찬찬히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 강아지똥은 지금까지 내 책꽂이 그림책코네에 주인으로 꽂혀있었고, 내 울타리로 들어온 어린 친구들에게 두고두고 읽혔지요.
선생님의 헐거웠던 생전의 생활만큼이나 남루하고 스러진 집(교회 문간방)을 보면서 우리의 작가에 대한 대우가 겨우 이 정도 인가 하면서 참담함과 함께 분노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시골 마을 교회 종 치기로 있으면서 평생을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작가로 작고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가신분.
지병으로 인하여 몸까지 아픈 분이어서 그 생활의 곤궁함은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 조차 생전에 선생님이 유명한 동화 작가란 것을 몰랐는데.. 선생님 돌아가시고 선생님을 기리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든 것이 그 마을 생긴 이래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인 일이었다고 회자되신 분.
이렇게 남들의 서간문이나 일기를 읽는 것은 그이들의 날것을 살짝 들여 보는 것 같은 묘한 설렘의 느낌이 있습니다.
오래전 읽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유명한 영혼의 편지를 읽고,
매 전시마다 소개되는 형제애와 예술인의 삶을 동경했는데, 이제 우리는 이 책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오덕학교를 알게 되고, 다시 한번 가보자고 내심 손꼽아 계획하고 있었는데 아직 못 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꼭 가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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