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4월의 유혹》
작가:엘리자베스 폰 아르님
출판사: 휴머니스트
봄의 향기가 유혹한다.
제목과도 똑같은
4월에.
"우리가 딱 한 번 우리끼리 멀리 가서 좀 쉬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요?"p.59
윌킨스 부인은
2월의 어느 날,
등나무와 햇살을 누릴 수
있다는 산 살바토레에서의
한 달 살이 광고를 접한다.
평소 여행을 즐기는 그녀가 아니었지만,
이 광고를 본 그녀는 결국 실행에 옮길 파트너를 찾는다.
남편이 있는 여인들이 하기엔
좀 긴 여행이다.
런던의 여인들이
이탈리아 바닷가 마을로
한 달 살이를 떠난다?
이 상상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환상적인가?
뭐든지 갑작스럽게
되는 건 없었다,.
별생각 없이 대충 흘겨본
광고 문구로부터 윌킨스 부인이 생애 첫 여행 계획을,
그것도 스스로 짤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 스스로도 결심이 서질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 4월의 휴양지를 간절히 바랐음을
로티 윌킨스는 확신했다.
이처럼 한쪽 귀퉁이
신문 지상의 짧은 광고는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여인들이 하기엔
좀 긴 여행이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지,
어떤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읽는 내내 궁금증이
멈추지 않았다.
기왕이면 혼자서 가야지, 무섭지 않을까?
로티는 아버스넛 부인을 발견했다.
사교 모임에서 한 차례 얼굴 정도 비춘 적 있는 사이였다. 그러므로 누군가 선뜻 나서서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할 만큼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다. 아버스넛 부인이 그 <타임스> 광고를 보고 있다는 걸 윌킨스 부인이 알아채기 전까지는.
자세히는 못 봤지만, 로티는 아버스넛 부인 또한 <타임스>를 짚어든 이상 중세 이탈리아식 성 광고를 봤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 두 사람은 함께 여행길에 오를 친구가 될 거였다. 왜 안 되겠는가?
실제로 아버스넛 부인은 그 광고를 봤다. 그러고서 시선을 빠르게 다음 광고로 옮겼다. 그녀 또한 그 광고를 수많은 홍보물처럼 별 생각없이 넘겨 짚었으니까.
그런데 기억조차 희미한
여인이 불쑥 달려들어
그 광고를 읽었느냐
묻는 게 아닌가.
상대 여자는 말했다.
나와 당신은 지금 우울하다고. 그래서 그 광고를 못 본 체하듯 흘겨봤을 거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광고 속
중세 이탈리아식 성이
선명히 그려지고 거기에
금세 매료될 거라고.
처음에 아버스넛 부인은 상대 여자의 무례함과 감상적 호소에 불쾌감을 느꼈지만, 곧 윌킨스 부인의 말대로 여행 광고를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게다가 윌킨스 부인의 말은 어딘가 주술 같은 분위기가 풍기기도 했다.
집에서 난 쩨쩨한 사람이었어요. 늘 재고 계산만 했죠. 난 정의에 대해 이상한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정의가 중요하기라도 한 것처럼요. 복수와 정의가 구별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선한 건 사랑뿐이에요. 집에서는 내가 사랑한 만큼 멜러시가 똑같이 돌려주지 않으면 나도 멜러시를 사랑하지 않으려 했어요. 그게 공평하다고 생각했죠. 무슨 그런 일이! 그리고 멜러시가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그랬어요. 그러니 집이 얼마나 무미건조했겠어요! 건조하고......"p161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 재고 자존심 세우고
그러다보면
유치해지고 쩨쩨해지고
그게 현실이다.
로티의 말처럼.
막상 실질적인 여행 준비를 하려 드니 경비 문제에 맞닥뜨린다. 남편에게 비밀로 부칠 참이기에, 그들은 가진 비상금만으로
중세 이탈리아식 성 월세를 충당할 수 없었다.
대신 이번 여행에 동참할 또 다른 여자들을 모집했다.
그렇게 모인 나머지 여자들은 레이디 캐럴라인과
노부인 피셔.
이들에게도 역시 사연이 있다. 레이디 캐럴라인은 유수 높은 집안의 아가씨로
남녀 구분 없이 감탄을 부르는 외모와 목소리를 갖췄다. 머리카락마저 아름답다
하지만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그녀에게
과도한 관심과 친절을 베풀었고,
캐럴라인은 그 모든 게 귀찮았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완전햐게 해방되기,
그것이
케럴라인의
여행 목적이다.
피셔 부인도 그와 비슷한 목적을 가졌지만 동기는 다르다. 오랜 세월을 거쳐 덕망 높은 지인들을 두루 사귄 피셔 부인. 그러나 그녀의 친구들은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녀 눈에 요즘 젊은 애들은 대게 버릇없고 어리석게만 보였다.
시끄럽게 살아 있기만 한 치들로부터 벗어나서,
이제 한적한 휴양지에
가만히 앉아
추억 속 친구들을 회상하는 게
피셔 부인의 유일한 낙이었다.
이렇게
저마다 다른 이유와
저마다 다른 나이, 성격, 성향, 인생관을 가진 이들이 과연 각자가 꿈꾼 휴식을 이룰 수 있을지.....
실제로 그들은 여행 직전부터 서로를 오해하고,
속으로 멸시하고 질책도 하고, 참견도 하고 모욕도 하고
아웅다웅한다.
한편으로는 이들이 좋아질 거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그들이 머무는 중세 이탈리아식 성이, 등나무와 햇살이
자리 잡은 풍경이,
지중해를 배경으로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곧 모든 문제를
눈 녹듯 풀어줄 것이다.
자연과 자유가 주는
힘이 이런 것이리라.
해묵은 남편과의
어색한 관계도 풀 수 있고,
누구의 부인이라 불리는 대신
제 이름을 상기할 수도 있고. 세대 간의 갈등이라든지
인간 관계의 복잡함이라든지 그게 뭐든 간에 말이다.
소설 속 얽힌 모든 문제가 한순간 해결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할지 모르지만,
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다.
작가 아르님이 펼친
이 중세 이탈리아식 성에서의 하루가 복잡한 인간 관계를 어떻게 풀어내는지를 보면 생각이 또 달라질 수도 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만난 것 같아 즐거웠다.
엉뚱하면서도
상쾌한 느낌을 주는 스토리와
그 곳에 함께 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의
세밀한 묘사,
라일락 향기가 코끝에서
머물고 있는
그런 분위기가
작가가 말하는
4월의 유혹이지 싶다.
나도 그런
4월을 보내고 싶다.
나에겐 이 작품이
4월의 유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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